활동을 통해 나이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요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고, 스타로서 매력을 과시했다. 어느새 그들은 소녀들의 ‘오빠들’에서 언니들의 ‘동생들’, 우리들의 ‘아들들’로 거듭났다. 그들은 1990년대 H.O.T 이후 모처럼 재림한 국민 아이돌이 되었다. 그들의 인기는 음반 판매와 시상식에서도 증명됐다. 동방신기는 음반 시장의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3집 음반의 인기에 힘입어 11월 데뷔 2년9개월 만에 음반 판매 200만 장을 돌파했다. 12월에는 서울가요대상 등 올해의 주요 가요수상식을 휩쓸었다. 이렇게 그들의 창대한 전성기는 2006년에 시작됐다. 이제 비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비는 국가대표 가수로 성장했다. 그가 무슨 노래를 불렀느냐보다는 그가 어디에서 공연을 했느냐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연초에는 이름만 들어도 명성에 주눅이 드는 미국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단독 공연을 했고, CNN의 <토크 아시아>에 나왔다. 그렇게 비는 단순한 한류 스타가 아니라 미국에서 뜨는 아시아 대표스타로 부각됐다. 마치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가 그를 응원하는 듯 느껴졌다. 연말에는 월드 투어로 월드 스타의 한 해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아시아 투어가 아니라 월드 투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 흔한 한류 스타가 아니라 독보적인 월드 스타라는 사실을 강조한 이름에 경배를 바치지 않기는 힘들었다. 12개국 35회 공연에 예상 수입 1천억원, 월드 투어의 엄청난 숫자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한국인의 열망에 단비가 되었다. 그렇게 국민은 세계로 뻗어가는 월드 스타 비를 응원했다.
방송가: 아나운서 전성시대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아나운서 전성시대가 열렸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누르면 여기도 아나운서, 저기도 아나운서가 나오는 시대다. 아나운서들은 교양·뉴스 프로그램뿐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했다. 강수정 아나운서의 인기로 시작된 아나운서 열풍은 노현정 열풍으로 정점에 달했고, 김성주 아나운서의 인기몰이로 완성됐다. 노현정, 강수정이 소속됐던 한국방송이 여성 아나운서로 시청률을 높이자, 문화방송은 김성주 아나운서에 이어 오상진 아나운서를 ‘키우면서’ 맞섰다. 그래서 여성 아나운서는 한국방송, 남성 아나운서는 문화방송이 강세라는 어설픈 공식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2006년 아나운서의 ‘셀러브리티’(유명인)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아나운서 열풍은 우리 시대 이상형의 변화를 반영한다. 최고의 엔터테이너 유재석이 “아나운서가 이상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만큼 아나운서는 시대의 이상형이 되었다. 실제로 유재석은 나경은 아나운서와 열애설을 뿌리면서 소원을 성취했다.
“공부하세요!”라고 출연진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얼음공주’라는 별명을 얻었던 노현정 아나운서는 재벌가의 청년과 결혼하면서 총총히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과거에는 여배우가 재벌가 청년과 결혼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아나운서가 재벌가 청년들의 관심을 받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미모와 교양을 겸비한 것으로 ‘여겨지는’ 아나운서들은 우리 시대의 명품 ‘셀러브리티’로 등극했다.
여성에 이어서 남성 아나운서들도 스타의 대열에 합류했다. 월드컵은 스포츠 스타만 낳지 않았다. ‘차-차 부자’와 함께 월드컵 중계를 하면서 재치 있는 입담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성주 아나운서는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경제야 놀자’ 코너를 진행하면서 스타 남성 아나운서의 길을 개척했다. 최근에는 오상진 아나운서가 김성주 아나운서에 이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떠오르고 있다. 한편 강수정 아나운서처럼 스타로 떠오른 아나운서들은 ‘프리’를 선언했다.
계그계: 마봉춘 귀환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2006년 개그 코드는 단연 ‘마봉춘(MBC)의 귀환’이다. 수년간 개그 프로그램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마봉춘이지만, 그도 한때는 남부럽지 않게 잘나갔다. <웃으면 복이 와요> <오늘은 좋은 날> <코미디 하우스>는 당대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마봉춘만의 독특한 개그와 화법은 진화와 발전에 실패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개그에 적응하지 못했다. <개그콘서트>와 <웃찾사>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콩트식 개그와 공개형 개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마봉춘을 차갑게 외면했다. 보다 못한 마봉춘은 과감한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체질 개선의 신호탄은 개편이었다. 지난 7월 개편과 함께 ‘컬투’가 이끄는 컬트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김미려가 마봉춘의 <개그야>에 긴급 투입됐다. 모피 코트를 입은 사모님과 김기사가 등장한 ‘사모님’은 첫 방송과 함께 대박이 났다. 이영애까지도 광고에서 “김기사! 운전해~ 어서!”를 외치며 사모님 따라하기에 나섰고, “운전해”는 올해 최고의 유행어 자리를 넘보며 판세를 뒤집었다.
‘사모님’ 외에도 ‘명품남녀’ ‘주연아’ 등의 히트작이 연달아 나왔다. 새로 투입된 개그맨과 기존 마봉춘 공채 개그맨, 신인 개그맨이 적절하게 섞이며 시너지 효과를 낸 마봉춘은 체질 개선에 대성공했다. 시청률이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바뀌었고 <개그야> 개그맨들도 유명 개그맨 대열에 합류했다. 마봉춘에게 2006년 가을과 겨울은 완연한 봄이었다.
‘개백수’(KBS)의 <개콘>과 ‘스브스’(SBS)의 <웃찾사>가 점령하고 있던 개그계 절대 강자 자리에 마봉춘은 <개그야>로 이름을 올려놓았고 개그계 삼파전 굳히기에 들어갔다. 마봉춘은 <개콘>과 <웃찾사> 쌍두마차에 브레이크를 걸어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했던 개그계에도 자극과 활력을 줬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윈-윈-윈’. <개콘>과 <웃찾사>, <개그야>는 각자 자기만의 개그로 매주 월·토·일 저녁 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마봉춘의 귀환으로 풍성해진 식탁, 이제 풍성한 식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개그계의 르네상스 시대가 내년에도 이어지길 바라며, “마봉춘, 똑바로 운전해!”
공연계: 비보이 열풍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더 이상 거리의 아이들이라는 말로 그들을 설명할 수 없다.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들도 격렬한 몸동작을 내세우는 그들의 맞수가 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9일 어엿한 전용극장 무대에 오른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그들을 주목한 사람은 공연 기획자와 주변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거리와 뒷골목에서 갈고닦은 그들의 ‘몸짓’에 열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 동안 15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고 ‘블루오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해 논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통해 화려하게 무대에 ‘데뷔’한 비보이(B-boy). 요즘 어디에서든 비보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비보이들이 무대를 뛰어넘어 안방극장까지 진입하고, 공연장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비보이가 공중으로 솟구쳐오른 뒤 회전을 하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광고(CF)를 잇따라 발표하고, 비보이팀의 후원자로 서둘러 나서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비보이 공연을 문화상품으로 선정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